아빠 연습 3년차

안녕하세요, 은수 아빠입니다. 예전에 영화 127시간에 대해 듣고 이야기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산행을 하다가 크레바스 같은 틈새로 떨어져 버리고 팔이 바위에 꽉 끼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게 영화에 등장하는 갈등 상황입니다. 며칠을 애쓰며 빠져나오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바위에 끼인 팔을 스스로 절단하여 빠져나옵니다. 끔찍한 내용이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영화 속 인물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대화 중 나왔었고 처음 생각으로는 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작은 휴대용 칼“을 사용하여 눈 앞에서 자신의 팔을 잘라내는 걸 누가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찾아보니 해당 인물은 가족 생각을 하며 생존의 열망을 갖고 버텼다는데요 다시금 생각해보니 저 역시 그런 상황에서 가족, 특히 아이를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을 것 같습니다. 아빠 없이 자라게 될 아이로 만들 수 없고 저 역시 다시 아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요. 아빠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극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놀랐습니다. 왜 어머니와 아버지가 강한지 이해할 수 있었죠. 이런 생각을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는 새로운 의견을 얘기해줬습니다. 왜 애초에 그런 위험한 활동을 시작했느냐 말이죠. 책임져야할 가정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활동을 하는게 어리석다고 생각한 겁니다.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땐 아마 다른 많은 이들과 비슷하게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연약해보이는 생명을 어떻게 잘 보살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특히 아이가 태어난 병원에서 나와 차를 태우고 산후조리원으로 향하던 길의 감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제 온전히 저와 아내에게 이 새로운 생명이 맡겨졌구나 하는 생각에 책임감과 열의가 생겨났습니다. 아이가 가족의 삶 속으로 본격적으로 침투해오던 시기는 걸어다니고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던 때 같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였다면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고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정말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내 모두 치열하게 육아 정보를 찾아보고 엄격하게 육아 이론을 적용하는 편은 아니였기 때문에 그저 함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아이를 키워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퇴근 길에 SF 소설을 읽고 있었습니다. 김창규 작가의 단편집이었는데 디스토피아 상태의 세계,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코맥 매카시 작가의 The Road와 비슷한 느낌으로 아이를 데리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스포일러 주의) 아이는 병을 앓고 있는데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숨을 거둡니다. 아버지는 밤새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 곁에 있었지만 아이가 세상을 떠난 순간은 아버지가 깜박 잠든 사이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순간을 목격하지는 못합니다. 아이의 표정은 편안해보였고 아이는 손을 아버지의 겨드랑이에 껴둔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네요. 쇠약해진 아이가 숨을 거두기 전, 그 두려운 순간에 아빠를 생각하고 의지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슬픕니다. 아이가 생긴 후, 이렇게 아이가 병마와 싸우거나 위험에 처하는 이야기, 상심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마음이 울컥합니다. 사실 저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 역시 놀랍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사람의 성격을 변성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아이는 그 존재만으로 한 사람의 오랜 습관과 사고를 뒤바꿔버립니다.

종종 미혼 동료 혹은 결혼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동료들이 물어올 때가 있습니다. 아이를 갖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라고 말이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면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면 결혼하고 아이 없이 지내는 것이 더 수월하고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 될수도 있지만 삶의 다양한 구석을 탐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할 존재를 만나보고 싶다면 아이를 가져보는게 좋을 것이라고 말이죠. 또 이런 이야기도 전합니다. 아내와 저 둘이서 여생을 보내는 일은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펼쳐보며 즐거워하는 일이라면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은 아직 펼쳐보지 못한 새로운 책을 한장씩 한장씩 넘겨가면서 읽어가는 일이라고요. 어느새 아이가 태어난지 3년이 지났네요. 아이가 자라 학교를 다니고 더 많은 경험을 함께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무서운 이야기가 많지만 아이의 사춘기가 어떨지도 궁금하고 말예요. 오늘도 두근거리며 책장을 넘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