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의 일주일 나기

#thought #family

나와 아내와 아이가 살고 있는 우리집은 쾌적한 집은 아니다. 작은 평수의 빌라인데, 비좁고 – 빛이 들지 않고 –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다. 부끄럽지만 남편이자 아빠로서 주거 환경 개선에 큰 관심과 힘을 쏟지 못했다. 뒤늦게 아이가 생기고 자라면서 심각함을 느꼈다. 아내 덕분에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이 생기긴 했지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1년 반 넘게 남았다. 특히 겨울엔 버티기 어려운데 추운 날이라 밖에서 쉽게 활동하지 못하고 집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주거 실험의 일환으로 일주일 동안 안국역 근처 호텔에서 머물러 보기로 했다. 나는 평소대로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고 두어번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는 호텔에서 머물며 더 정돈된 생활 공간과 빛이 잘 드는 공간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물론 밖으로 나가기도 더 수월하다.

나는 결혼하기 전에 크게 주거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혼 전 가족과 지내던 작고 허름한 집, 아주 작은 방이 쾌적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워커홀릭으로 지내던 시간이 길었는데 대부분의 관심과 에너지를 일하는데 쏟았다. 먹는 것이나 머무는 공간은 내게 별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이 부분이 업무 역량을 키워줄 수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특히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에게 미안한 일이 많았다. 응당 기대하는 결혼 생활의 모습이 있을텐데 나는 철없이 내가 살던 모습의 관성에 따라 생활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개인적으로 업무 관련 (그러니까 컴퓨터) 공부에 매진했고 업무 관련 취미에 매달렸다.

안국역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한번 묵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 아내와 종로 데이트를 자주했다. 아이가 생기자 데이트는 커녕 영화관 한번 가기 어려워졌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그 생활이 이어졌다. 아이가 크자 같이 여행 다니기 수월해졌고 종로엘 한번 가보자 하여 안국역 호텔에서 묵었던 곳이다. (호텔의 정확한 명칭은 서머셋팰리스 서울이다. 낡은 느낌이긴 하지만 레지던스 호텔이라 취사 가능한 부엌이 있고 객실 크기도 크다. 대부분의 객실에 작은 거실 공간이 있다) 그때 경험이 좋았는데 숙박비가 저렴했고 객실 공간도 충분했다. 이제 머무른지 6일차가 되었는데 불편함 없이 지냈다. 생활을 하며 오래 지내보니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 종로는 아무래도 업무에 치중된 지역이라 아이와 같이 갈만한 곳이 많지는 않다. 우리집은 바로 앞에 우이천이 흐르고 있어 늦은 밤에도 산책 다녀올 수 있지만 안국역 주변은 상점들이 대부분이라 달리 갈만한 곳은 없다. 물가도 체감하는데 강남역 부근 보다 더 물가가 비싼 것 같다. 그래도 좋은 부분은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고궁미술관, 인사동 등 들를만한 관광 포인트는 주변에 많다는 점이다.

생활 측면에서도 불편한 건 별로 없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기 쉽고 비마트로 필요한 생필품도 쉽게 공수할 수 있다. 전자렌지와 하이라이트가 있어 파스타 정도를 해먹었고 레토르트 음식들이나 즉석밥을 데워 먹기도 했다. 이렇게 호텔에서 묵어보면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입을 옷가지들 있고 먹을 것이 해결되면 되니까. 하나 더 필요한게 있는데 아이 장난감이다. 집에 아이 장난감이 많아 때로 치워야 하나 생각이 들고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지켜보니 먹는 것만큼 필요한 게 장난감 같다. 의도된 대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장난감을 집어들고 여러 상황을 만들어내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창의성의 재료가 되는 것이 장난감이니 어지럽게 흩어져 돌아다니는 장난감들이 없으면 아쉬운 것이다.

이번 일주일이 아내에게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다음에도 일주일 살기를 한다면 아이와 산책하기 좋은 곳 주변으로 가도 좋겠다. 요즘은 날이 춥기도 하여 밖에 잘 못 나가는데 (유난히 숙소 주변이 춥게 느껴진다. 강남에서 일하다가 숙소 쪽으로 돌아오면 같은 기온이여도 왠지 더 춥다) 따뜻한 날에 놀러가면 산책을 많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