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오다
2025년 말, 남양주 마석으로 이사를 했다. 2017년 신혼집에 살기 시작한지 8년이 꽉 차도록 도봉구 창동에서 살았다. 주거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장인어른이 갖고 있던 빌라를 매수하여 신혼집으로 살았다. 아내와 둘이서 살 땐 집이 좁지도 않았고 볕이 들지 않는 것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혼자 지낼 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집에 무관심했구나 싶다. 부모님과 같이 살 적엔 내 방에서 주로 지냈다. 집에 돌아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컴퓨터를 하면서 보냈다. VR 장치가 없어도, 나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키보드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컴퓨터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방은 꽤나 작은 편이었는데 반평 정도 되는 크기였을까. 고시원에 살아본 기억이 있는데 그 정도 크기다. 어쩌면 더 작았을지도 모른다. 작은 싱글침대를 넣을 공간이 없어서 나는 이불을 깔고 잤으니까.
아이가 생기고 나니 집에 좁고 불편해졌다. 8년을 사는 동안 책과 물건도 많이 늘어 더 그랬다. 아내와 나는 종종 통로에서 만나 서로의 통행을 위해 기다리거나 비켜줘야 했다. 이사를 하고 보니 짐의 양을 더 실감했는데 새집으로 놀러왔던 처남네와 장인장모님도 짐의 양에 놀랐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볕이 들지 않는 좁은 4층 빌라. 아이는 종종 창동집 이야기를 하는데 그곳에 추억이 있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아이 인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자라며 보냈을 것이라 그럴만도 하다.
새로 이사온 집은 넓고 쾌적하다. 고층이고 창문 밖으로 풍경을 가로막는 것도 없어 멀리 산들이 보이고 하늘이 가득 보인다. 햇볕도 잘 든다. 아내는 이런 변화에 감개무량할 것이다. 주거에 무관심했던 나를 끌고 이사를 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청약 기회를 자주 알아보고 내가 커리어에 대부분에 관심을 쏟을 때 밤낮으로 주거 환경 개선을 고민했다. 내가 빚진 부분이다. 누군가는 좋은 뷰 역시 몇주 안 간다고 하던데 우리는 오래도록 즐거울 것 같다. 오랜 시간 우리 만의 굴 속에서 지내던 사람이라.
남양주 마석은 서울에서 꽤 멀다. 경춘선이 지나고 한 정거장 더 가면 대성리 좀 더 가면 곧 가평과 춘천이다. 이사하기 전엔 지레 겁을 먹기도 했는데 막상 출퇴근을 해보니 창동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도봉구 창동 역시 서울이라 하기엔 너무 변두리였고 의정부 바로 옆이었으니 말이다. 편도 1시간 10-30분 정도면 강남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 (워낙 오래도록 먼 출퇴근 길을 경험하고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새집 근처는 마석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낡은 느낌이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파트들이 많고 그에 걸맞게 번화한 상점가도 있다. 처음엔 새집 근처 환경만 보고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럴 건 없다. 게다가 아내와 나 모두 집에 머물길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낸다. 창 밖으로는 날씨를 알 수 있는데 (당연한게 아니다. 예전 빌라에서는 창 밖 풍경이 없었는데 옆에선 빌라로 가려져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옆집의 베란다 풍경이 전부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눈 내린 풍경,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산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새집 근처엔 천마산이 있다. 800미터 정도 높이의 산이다. 입주 청소할 때 시간이 잠깐 남아 천마산엘 다녀왔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급하게 오르내렸고 2시간 정도 걸렸다. 안개가 가득해서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자연 속으로 파고 들어 복잡한 것들과 멀어지는 경험은 늘 신선하다. 날씨가 좋을 때 한번 더 산행을 하고 싶다. 아이는 뛰어놀기와 장난감들, 아내는 아내가 좋아하는 책과 커피와 차, 나는 컴퓨터와 산행 등 각자 새집에서의 추억을 만들어나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