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변

제가 일하는 책상은 항상 물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동료들의 책상을 살펴보면 정말 물건 없이 일하기 위한 장비만 있는 책상도 있고 적은 수효의 사무용품 정도만 갖춘 책상도 있습니다. 물건이 많은 책상도 더러 보이지만 저의 책상보다 물건이 많은 책상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 마음으로는 최소주의, 미니멀리즘을 꿈꾸고 있지만 오랜 시간 저의 모습을 살펴보니 가망이 없어보입니다. 미니멀리즘을 다루는 책을 종종 사두어 책장에 두는데 이런 행위는 미니멀리즘의 반대 방향이겠지요. 이렇다보니 이제 차라리 변명을 하렵니다. 맥시멀리스트들이여 부끄러워하지 말라,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자!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건 저의 경우엔 물건의 금전적인 가치보다 정서적인 가치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추억이 서려있는 물건이라면 그 가치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대단하지 않아도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그 자체로 소유자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개성을 나타냅니다. 물론 그 사람의 관심사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결국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과 개성을 선택하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물건을 버리는 일은, 이제 더이상 나의 일부로 남기지 않아도 될, 이제 지나가버린 나의 정체성을 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의 경우엔 커피용품들, 외발자전거, 그림 도구들, 모터싸이클 등이 그렇습니다. 불교에선 자아라는 허상을 이야기하는데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처럼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상 역시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쉽게 바뀌는지요. 책상 위의 물건들, 주변의 물건들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맥시멀리스트는 한 시점에 다루는 관심의 폭이 넒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비자발적 맥시멀리스트의 입장에서 이야기 해본다면 물건을 주변에 두는 일은 아직 남기고 싶은 나의 일부, 나의 관심을 기억하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와 같습니다.

결혼 후 아내와 지내며 집 안의 물건들을 정리해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물건들 중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전자공학 만들기 재료였습니다. 언젠가 만들기에 쓰려고 사둔 부품들과 필요한 장치들이었는데 결국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당근마켓에서 나눔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정말 필요한 것들로만 추려내어 다시 전자공학 만들기 재료들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작은 상자에 들어갈만큼의 양인데 멀티미터와 브레드보드, 전선, 작은 부품들 정도로 이 상자는 사무실 자리에 두었습니다. 아직 전자공학 만들기를 그만둘 때가 아니었나봅니다.

물건을 기억의 보조 장치로 두는 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맥시멀리스트는 아무래도 물건에, 만질 수 있는 물질에 마음이 가는 모양입니다. 물건이 많아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애정과 관심이 많은 것이니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동안은 기쁘게 주변에 두고 보내줘야할 시기에 잘 보내주는 것이 맥시멀리스트의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