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이유
많은 횟수는 아니지만 근래 등산을 몇번 다녀왔다. 문득 아이가 아빠는 산엘 왜 갔어요 라고 묻길래 왜 가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냥 뭉뚱그려 거기 즐거움이 있으니까 라고 할 수 있지만 어디서 온 즐거움인지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사실 오랫동안 등산이 취미는 아니었다. 부모님과 같이 지낼 적에 하남 검단산을 따라 나섰던 것 몇번이 전부였다. 등산은 어른들의 취미로만 보였고 사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엔 젊은이들이 등산을 즐기지도 않았다. 30대가 되면서 실내 클라이밍을 취미로 삼았는데 종종 클라이밍짐 대표님이 이끌던 야외 볼더링 모임에 나가곤 했다. 바위를 찾아 산을 오르고 거기서 문제를 풀었는데 산을 오르는 건 바위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산행으로의 길은 다소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작은 맥가이버칼, 그러니까 빅토리녹스 스위스 아미 나이프였다. 웹을 돌아다니던 중 네이버쇼핑 광고를 봤는데 맥가이버칼이 있는게 아닌가. 홀린 듯 광고를 따라가 멀티툴 하나를 샀다. 유사 시에 사용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걸까, 어릴 적 맥가이버의 멋진 모습이 떠오른걸까 아무튼 멀티툴을 갖고 나니 멀티툴에 대해 찾아보는데 (아 나는 트레일마스터 라는 모델을 샀다) 그러다 생존주의 게시글들을 만났다.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필요한 도구들을 갖추고 그런 도구들을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춘다. 맥시멀리스트로 살던 나였기에 금방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EDC (Everyday Carry), 생존 가방 등 물건은 늘어나는데 쓸만한 상황은 없다. 사실 그래야만 하리라. 삶은 대부분 일상의 것들로 채워지고 비일상은 말 그대로 드물기 마련이다. 위기 상항이 그렇게 자주 발생한다면 견뎌낼 수가 없으리라. 아무튼 물건들이 놀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보니 백패킹에 가 닿았다. 많은 부분이 겹쳤는데 일단 백패킹 자체가 내가 하루 혹은 여러 날 입고 먹고 자고 등 자족할 수 있는 행위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백패킹 장비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텐트 침낭 매트 가방을 기본으로 갖추고 그 밖의 자잘한 것들을 사다보니 또 물건이 한가득이다.
아내를 채근하여 백패킹을 한번 다녀왔는데 자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산행이 등장한다. 산에 올라 자고올 수는 없으니 그냥 산행을 다녀오리라. 그렇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게 적었지만 사실 많은 산을 오르진 않았다. 도봉구 창동에 살 적엔 근처에 도봉산이 있어서 혼자 두번, 아이와 한번 다녀왔다. 처음 갔을 땐 끝까지 오르지 못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였다. 아내에게 아침 시간 3시간 정도를 달라 산엘 다녀오겠다 했는데 버스타고 도봉탐방센터에 가니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실제 산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40분 정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 두번째 도봉산행은 아이와 함께였다. 도이터 캐리어에 아이를 업고 같이 산을 올랐다. 20키로가 좀 넘는 무게였을 것이니 동계 백패킹 정도의 느낌이었으리라. 이때도 정상에는 가질 못했는데 이유는 오르는 길이 험해서 였다. 나 혼자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이를 업은 채 오르려니 위험해서 석굴암 까지 오르고 하산했다. 세번째 도봉산행에서 신선대엘 올랐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점점 험해졌는데 아이와 함께 오르기 어려울 코스였다. 어쨌든 이사 가기 전에 도봉산 끝까지 올랐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웠다.
불암산은 첫 백패킹을 했던 산이다. 아이와 놀아주다가 늦은 저녁에 산으로 출발했다. 불암산을 처음 가보는 것이었는데 야간 산행에 백패킹이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려운 산행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론 모든 부분이 수월했다. 그리 춥지 않은 날이여서 하룻밤 묵는 것도 상쾌했다. 그때가 아마 11월 초순이었으리라.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올랐던 하남 검단산도 혼자 올라봤다. 별로 높은 산은 아닌 것 같은데 정상 풍경은 확 트여있어 시원했다. 내가 오른 산 중에서 가장 수월했던 산 같은데. 대만 타이페이에서도 산행을 했다. 칠성산 이었는데 특이하게 화산 활동의 흔적이 남아있어 유황 냄새와 연기가 자욱한 구간이 있었다. 실제 뜨거운 김이 나오고 있어 신기하게 오래 쳐다보곤 했다.
가장 최근의 산은 남양주 천마산. 천마산 시립공원이 이사온 집에서 멀지 않다. 입주 청소를 하는 날에 다녀왔는데 이때도 시간이 많지 않아 바쁘게 오르내렸다. 오를 때 1시간 내려올 때 1시간 걸렸다. 아쉽게도 안개가 많아 풍경을 즐기진 못했다. 알아보니 천마산의 운해가 아름답다고 한다. 날 좋을 때 다시 한번 올라가 봐야겠다.
앞으로의 산행을 생각해본다면, 새해엔 아내 허락을 받고 백패킹을 한번 더 다녀오고 싶다. 천마산을 또 오른다면 시간 제한 없이 여유롭게 다녀오고 싶다. 결혼을 하고 나니 다루기 어려운 상사가 생긴 삶이 되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