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상영관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의 제품은 VR 콘서트입니다. 인간의 시각을 모사한 스테레오 카메라로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촬영하고 이를 VR 장비를 통해 보여주는 식이죠.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장비는 아직 충분히 보급되지 않아 촬영한 컨텐츠를 디지털 형태로 전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대중에게 익숙한 방식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영화관에서의 상영입니다.
회사에서 마련한 VR 장비들을 상영관에 비치해두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관객은 자리에 앉아 VR 기기를 착용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스크린 영상 송출 그리고 음향 송출을 위해 영사실에서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상영관에서 VR 콘서트 상영을 한다고 하면 미리 상영관 공간을 파악해두고 영사실에서 실제 영상과 음향 송출을 테스트합니다.
요 며칠 상영 준비를 위해 메가박스 코엑스를 찾았습니다. 보통은 하루의 모든 영화 상영이 끝난 시간을 이용하기 때문에 새벽 시간에 방문합니다. 오전 1-2시 쯤 작업을 시작하고 그날의 작업을 완수하면 오전 4시정도 입니다. 사실 심야 시간에 코엑스를 방문할 일은 없어서 처음엔 풍경이 생경했습니다. 사람들로 가득차 붐볐을 공간은 이제 텅 비고 혼자 그 넣은 공간을 누빕니다. 그 시간에 코엑스엘 들어갈 수 있나? 이미 문이 모두 잠겼거나 경비원에 의해 못 들어가는 건 아닌가? 걱정도 했는데 생각보다 출입이 자유로웠습니다. 일단 영화관에서도 심야 상영을 하기 때문에 새벽에 끝나는 영화들이 있고 해당 영화를 관람한 고객들 역시 순조롭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오전 1시쯤 영화관에 갔을 때 영화 관람을 마치고 이동하는 손님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 보통 영사실에서 작업을 합니다. 평소였으면 절대 들어갈 일이없었을 영사실, 곧 영화관의 뒷편이라 처음 영사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영사기, 영사기와 연결된 미디어/음향 장비들이 신기했고 영사실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상영관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빠져나오면 이제 정말 사람들이 사라진 상영관을 만납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상영관을 누비면 마치 못된 짓을 하는 기분이 듭니다. 새벽에 작업하는 일은 피곤할만도 한데 실제 일하고 있는 시간엔 별로 피로를 느끼지 못합니다. 아마 약간은 흥분한 상태, 각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밤 늦도록 작업을 하고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엔 같이 고생했다는, 함께 일을 만들어 나간다는 유대감이 생깁니다.
곧 심야의 상영관은 끝이 나고, VR 콘서트를 관람하러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게 되겠지요. 그때의 상영관 역시 무척이나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