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대한 감각

2024년 11월엔 첫 백패킹을 다녀왔다. 일요일 오후 6시쯤 집에서 나서 택시 타고 불암산 안내소에 도착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추운 날은 아니었고 오히려 오르는 길엔 땀이 많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17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지고 오르는 일은 맨몸 산행보다 힘든 일이니. 이미 해가 진 상태에서 오르는 것이라 헤드램프를 착용하고 야간 산행을 한 것인데 처음이라, 그리고 왠지 혼자 어둠 속에서 올라가니 오싹해서 더 속도를 낸 것도 있다. 1시간 가량 걸려 정상에 도착했고 정상석 부근의 데크에 텐트를 설치했다. 일요일-월요일 넘어가는 밤이라 나처럼 야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으슥한 밤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는데 오후 11시쯤 남자 여자 네다섯명으로 구성된 크루가 올라왔고 새벽 2시 4시에도 한차례씩 등산객이 있었다. 오전 7시쯤이었나 해가 뜨고 사위가 밝아졌는데 새벽 등산객들이 보여 텐트를 정리하고 하산했다. 등산스틱이 아주 요긴했는데 무거운 배낭을 맨 상태에선 오르는 길에 다리의 부담을 덜어주고 하산할 때도 무릎의 부담을 덜어줬다. 균형 잡는 것도 스틱을 사용하니 수월했다.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온 백패킹이었는데 나중에 아내와 이야기 해보니 아내의 시각은 달랐다. 아내 생각으로는 백패킹 자체가 위험한 활동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혼자하는 백패킹을 말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실족하거나 그 밖의 이유로 다칠 수 있는데 혼자라면 도와줄 사람이 없어 위험하고, 야간 산행이라면 시야 확보도 낮 보다는 어렵고 사람 역시 없어 더 위험하다. 산에서 머무는 일도 위험할 수 있는데 산짐승이나 이상한 사람을 마주하는 위험이다. 여기에 추운 날, 비 혹은 눈 내리는 날이라면 저체온증의 위험도 더해진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위험에 대한 감각이 나는 무딘 편인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계산된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한 내용 중 대부분은 이미 파악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한다. 물론 대비를 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최종적인 위험을 평가할 때 나와 아내는 위험의 발생 확률을 적용할 떄 다른 수치를 사용하나보다. 나는 낮은 확률이라 생각하여 최종적인 위험의 강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높은 확률을 적용하여 큰 위험을 감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나와 아내의 그 중간 어디쯤이 실제 위험의 크기겠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며 위험을 비롯한 사건들을 계량하고 대비하고 통제하고 혹은 대처하는 일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기반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백패킹을 하는 것도 일상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자신만만함 혹은 오만은 정말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겠다. 게다가 아직 어린 아이가 있는 상황이니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게 맞다. 경험을 쌓고, 아내가 보기에도 내가 감수하는 위험이 충분히 파악된, 그리고 통제된 위험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땐 백패킹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