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dane Epiphany

소프트웨어, 글쓰기 그리고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

내가 일하는 사무실, 내 자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넷이 모여있는 곳이다. 나는 밖이 잘 보이지 않는 창가 자리인데 내 옆 복도 쪽으로 동료 두 명의 자리가 잇달이 있다. 어느 아침 두 동료는 Gen AI 서비스 활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ChatGPT와 화면을 공유하며 대화식으로 레거시 코드를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는가, 그리곤 실제 스크린샷을 찍어 GPT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얼추 의미있는 답변을 한다. 하지만 ChatGPT Plus를 사용할지 비용적인 고민을 나누는데.. 가운데 동료가 이야기 했다. “요즘 자신의 주력 코드 편집기는 Cursor 인데 다양한 벤더의 LLM을 사용할 수 있어 좋다. 비용은 한달에 2만 5천원 정도 나가는데 더 비싸지면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이젠 Github Copilot 그리고 ChatGPT의 도움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일한다. 문법을 물어보거나 간단한 보일러플레이트 작성을 요청하거나 아예 추상적으로 문제를 기술하고 해결 방법을 조언 받기도 한다. 얼마전에 봤던 기사^1가 있는데 그 내용에서도 이제 Gen AI 코딩 도구는 성숙했고 많은 개발자들이 그로부터 생산성 향상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동료의 이야기에서 문득 AI가 빚어내는 직업 내 양극화를 생각했다.

어떤 엔지니어는 AI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적은 시간으로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혹은 더 능숙하게 문제를 찾고 더 나은 퀄리티의 코드를 만든다. 하지만 어떤 엔지니어는 AI 도구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방식만 따른다. 여기서 격차가 발생한다. 지금은 그저 능숙함이 둘을 가르는 기준이었지만 AI 접근성에 대한 다른 제약이 들어가면? 이를테면 나의 동료가 걱정했듯이 AI 코딩 지원도구의 구독료가 비싸 선뜻 사용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때 AI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그만한 재력이 있는) 엔지니어는 그 기술을 사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더 나은 학습을 한다. 이는 엔지니어의 기술적 우위를 만들고 더 나은 보수를 받게 한다. 반면 AI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엔지니어는 단위 시간 동안 더 적은 생산을 하고 더 낮은 평가를 받는다. 한쪽은 양 Positive 의 피드백 사이클로 향하고 다른 쪽은 음의 방향으로 향한다.

이는 비단 엔지니어의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AI Assistant의 능력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고 그들 사이에서도 격차는 발생할 것이다.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이 그러했듯 스마트폰이 그러했듯 ChatGPT 같은 기술 또한 일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ChatGPT Plus처럼 더 강력한 능력을 가진 AI를 제공하는 차별화는 있을 것이니.. 지금부터 AI 기술을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고 활용 능력을 기르는 것이 뒤처지지 않는 길이겠다.

어느 저녁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컨텐츠 소비와 생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와 아내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 그리고나서 어떤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쉽게 표현하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면 어떤 컨텐츠를 촬영하고 보여줄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보통은 자신의 삶 속에서 컨텐츠 원천을 찾겠다. Comble의 영상을 보면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일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문하는 다양한 나라에서의 짧은 생활들을 찍어 영상으로 만든다. 슛뚜와 지호필름의 경우, 집 안 풍경을 보여주는 일이 중심이다. 깨끗하게 정돈해 둔 집안에서 하는 일상적인 활동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은 일상대로 살아야하기 때문에 컨텐츠 원천을 위해 늘 새로운 일을 기획하기는 어렵다. 침착맨 정도 되면 기획을 담당하는 프로듀서들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영상 재료들을 마련할 수 있지만 말이다. 아내와 나는 어떤 원천을 생각할 수 있을까. 아내라면.. 읽은 책이나 읽은 영상들에 대한 리뷰, 아니면 매일 마시는 커피와 차 시간이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럼 나는? 매일 일하며 컴퓨터를 하긴 하지만 내용이 전혀 대중적이지 못하니 탈락. 하지만 컴퓨터가 아닌 것도 배우고 익히고 있으니까 그것들을 재료로 삼는다면 좋겠다. 요즘 The Lost Art of Running 책을 읽고 있으니 달리기에 대해 배운 내용을 적어보거나 아니면 책 Outlive에서 본 건강 내용을 적어볼 수도 있겠다. 때로 쇼핑을 하며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그때도 적지 않은 지식을 얻게 된다.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린 늘 학습하고 있는데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며칠 전에 일하다 든 생각인데 일할 때도 기록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것. 작업을 계획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이 찾아보고 고민하는데 정작 기록으로 남는 건 없다. 그래서 할일을 작은 작업들로 나누어 칸반 보드에 적고 작업 노트를 적어봤다. 작업 노트엔 “Requirements & Description”, “Definition of Done”, “Estimated Manday”가 기본적으로 들어가고 그 아래엔 작업 과정에서 고민한 내용들을 적어보고 있다. 작업의 상세 내용과 조건들, 확인한 사실들을 글로 적어 시각화 해두니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다. 괜히 노트, 그러니까 종이와 펜이 있는게 아니다. 종이는 어떤 내용을 영속적으로 남기고 싶을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도구가 된다. 배우고 익힌 것들을 남기려면 그것들을 재료로서 잘 정리해둬야 할테니 그것부터 연습하면 좋겠다.

물건을 정리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요령을 생각해보고 있다. 일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큰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했다. 큰 물건을 치우는 일의 어려움은 그냥 내다버릴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주민센터를 통해 대형폐기물 처리 스티커를 사거나 빼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버린다. 버려야 할 큰 짐들은 혼자서 내리기도 힘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버릴 수도 없다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므로). 고장난 김치냉장고를 버려야 할 때도 곤란했는데 아내가 찾은 폐가전 수거 서비스를 이용해 버렸다. 젊은 청년 한명이 와서 냉장고를 내리는데 나는 균형 정도 유지하는 일을 돕고 힘든 작업은 청년이 다 했다. 고생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그럼 작은 물건들은 버리기 쉬운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집 안의 풍경을 둘러보았을 때 질서를 해치는 것들은 작은 물건들이다.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 식탁, 혹은 책상들은 하나의 큰 볼륨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그 볼륨 안에서는 통일성을 갖고 있으므로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되지 않은 모양과 색들을 가진 작은 것들이 질서를 해친다. 우리 눈과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질서 없이 책상 위에 늘어선 물건들이고, 책장 사이 사이에 끼어든 책이 아닌 물건들이다. 게다가 버릴 때도 문제다. 소파를 처분하는 일은 하나의 큰 고민이다. 소파를 버릴까 말까. 하지만 작은 물건들은 물건의 수효만큼 작고 많은 잽을 날린다. 이 물건은 아직 쓸모가 있을까? 이 물건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가? 누군가 선물한 이 소품을 버려도 될까? 특히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들도 고민을 키운다. 여기 여분으로 갖고 있는 가위와 풀은 어떻게 할까. 결정을 유보하는 방법을 사용해도 좋겠다. 두 개의 봉투를 준비하여 하나는 기부, 하나는 버리기.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작은 물건들을 저 두 종류의 봉투에 “일단” 담아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달쯤 묵혀보고 그 사이에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봉투의 목적대로 기부하거나 버리기.

작은 것들의 해악은 물건에서 그치질 않는다. 나의 경우엔 관심도 그렇다. 작은 관심들은 정작 크고 중요한 관심을 앗아가며 집중을 해친다. 나는 흥미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꾸준히 동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들이 자주 눈에 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습관으로 만들면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작은 관심들은 어디 관심 주머니에 잘 넣어두고 중요한 일들을 마친 다음 꺼내보아야 한다. 삶은 무얼 할지 결정하는 순간의 연속이고 그 순간마다 당면한 일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우선순위를 잘 부여하고 관심과 동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성취의 열쇠이리라.

도서 정보: Sasaki, Fumio. “Goodbye, Things: On Minimalist Living.” Penguin Books Ltd

얼마 전 백패킹에 관심을 가지며 물건들을 잔뜩 사모았다. 아내의 제지로 멈출 수 있었는데 그때 돌이켜보니 평소에도 별로 생각하지 않고 물건을 사고 있었다. 어느새 소비주의에 깊게 물들어 버렸고 나도 모르게 쇼핑에서 위안을, 순간의 행복을 찾고 있었다.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 불필요한 물건이 가득했다. 잠깐의 흥미와 애정으로 샀던 작은 소품들, 사두고 쓸만한 때를 찾지 못한 좌식 의자, 언젠가 그림 그리고 글 쓰겠다며 사 모은 노트와 필기구들 그리고 많은 책들.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예전에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지만 잠깐 감명 깊고 실제 생활엔 적용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이번엔 실제 행동이 필요한데 이사에 앞서 짐들을 줄이긴 해야하기 때문이다. 백패킹 장비들이 새롭게 공간을 차지한 만큼 그것 이상으로 짐들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Goodbye, Things: On Minimalist Living 책을 읽기 시작하며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실생활에 적용해보며 짐들을 줄여나갔다.

일본 저자의 책인데 스스로 미니멀리즘을 삶에 적용하며 얻은 교훈과 팁을 적고 있다. 저자는 물건에 치여 살던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물건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였다고 자평한다. 물건을 정리해보면 느낄 수 있는데 실제 물건의 쓸모나 가치 때문에 처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진짜 어려움은 물건과 엮여있는 생각과 감정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다던가 의미있는 이벤트를 기억하게 만드는 물건, 혹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부분을 구성하는 물건들이 그렇다. 이를테면 나는 라스베이거스 AWS 행사에 참여했던 이름표 혹은 뉴욕 컴퓨터 아키텍처 컨터런스에 참석했던 이름표들이 그랬다. 앞서 이야기한 노트와 필기구가 그렇고 아직 읽지 않은 수학 물리 책 그리고 예술 서적들이 그렇다.

아래엔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남겨본다.

But by getting rid of my things, I’ve finally started to break out of that situation. If you’re anything like I was—dissatisfied with your life, insecure, unhappy—try reducing your belongings. You’ll start to change. Unhappiness isn’t just the result of genetics or past trauma or career trouble. I think that some of our unhappiness is simply due to the burden of all our things

Possessions can make us happy only for brief periods. Unnecessary material objects suck up our time, our energy, and our freedom

우리는 물건을 그 자체로 양(Positive)의 효용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은 오히려 음의 효용을 가진다. 그 말인즉 우리의 주의력과 시간, 에너지를 빼앗는 존재가 되버린다. 물건 사는 일은 잠깐의 행복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물건들이 행복을 앗아간다.

Minimalism is a lifestyle in which you reduce your possessions to the absolute minimum you need. Living as a minimalist with the bare essentials has not only provided superficial benefits like the pleasure of a tidy room or the simple ease of cleaning, it has also led to a more fundamental shift. It’s given me a chance to think about what it really means to be happy

Reducing the number of possessions that you have is not a goal unto itself. I think minimalism is a method for individuals to find the things that are genuinely important to them

미니멀리즘은 표면적으로 물건의 수효를 줄이지만 깊게는 개인의 삶과 닿아있다. 물건을 버린다면 버릴만한지 저울질 해야하고 그건 그 물건이 쓸모 있는지 쓸모 없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 곧 중요한 것을 남기는 것이 미니멀리즘 아래의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적은 물건만 남기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각자의 미니멀리즘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물건의 수효를 갖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There probably aren’t many people who will suddenly decide to reduce the number of possessions that they have and become a minimalist overnight. As I said earlier, the act of discarding things is a skill.

하루 아침에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물건 버리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고 배워야 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쌓인 물건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기 보다는 연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Get rid of it if you haven’t used it in a year. / But if you haven’t used something during the past four seasons, you probably don’t need it. The one exception would be the emergency equipment and supplies that you keep in case of a disaster / An item that you haven’t used this past year probably won’t suddenly become necessary next year or the year after that

이건 나도 생각한 일이 있는데,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라면 혹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물건이라면 더이상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시간이 증명해준 셈이다.

Instead of relying on organization techniques, you should first focus on decreasing the amount of things you have to put away. Once you do that, your space will naturally become less cluttered; the cycle will be broken. I have so few items in my apartment, it simply doesn’t get cluttered. The concept of clutter itself has left me!

The same can be said for the nests that we call storage. Even if we clear it out thoroughly, we’ll eventually start filling it up again. So the most effective method for cleaning up is to do away with the nest itself

When our possessions no longer have a comfortable home, they’ll be just like those pesky insects without a nest—they’ll eventually start to disappear

정리의 문제에 앞서 일단 물건의 수효를 줄여야 한다. 어질러져 있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수납함을 구입하고 물건을 넣어두면 그 물건은 잊혀진 채 자리를 차지하기 십상이다.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치워버리고 숨을 곳이 없도록 “둥지”를 치워버려야 한다.

When we practice minimalism, we’ll spend less time being distracted by the media or by advertisements because we become aware that we already have everything that we need. And when we feel this way, we can easily ignore most of these messages that cry out to us.

미니멀리즘을 행한다면, 미디어 혹은 광고에 덜 현혹되며 시간과 에너지를 덜 빼앗길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에게 쏟아지는 소비주의의 메시지들을 무시할 수 있다.

There are things you love so much that they start to feel like they’re a part of you. They assemble themselves into a persona that you then have to maintain. Parting with those things means you’re freeing yourself from that particular consciousness.

물건들은 우리 자아를 반영한다. 어떤 시점의 관심들이 물건을 사들이게 만들고 그런 관심들이 모여 우리의 개성, 곧 “나”를 표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관심은 바뀌고 나라는 사람도 바뀌어 가지면 물건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를 이루었던 물건, 곧 관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망령처럼 남아있다. 물건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은 아닐지라도 한때 나였던 나의 일부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주저하는 것이다.

When we let go of our possessions, our ability to concentrate improves. Why might this be? Things don’t just sit there. They send us silent messages. And the more the item has been neglected, the stronger its message will be.

소유하는 걸 줄일 수록 집중하기가 쉬워진다. 물건들은 그 자리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물건들은 제각기 관심을 가져가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가족들과 여행엘 가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숙소 때문이다. 숙소의 고급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물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숙소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가벼워지고 근심도 사라진다. 다시금 우리가 얼마나 적은 물건들로 생활할 수 있는지 떠올리게 만든다.

2024년 11월엔 첫 백패킹을 다녀왔다. 일요일 오후 6시쯤 집에서 나서 택시 타고 불암산 안내소에 도착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추운 날은 아니었고 오히려 오르는 길엔 땀이 많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17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지고 오르는 일은 맨몸 산행보다 힘든 일이니. 이미 해가 진 상태에서 오르는 것이라 헤드램프를 착용하고 야간 산행을 한 것인데 처음이라, 그리고 왠지 혼자 어둠 속에서 올라가니 오싹해서 더 속도를 낸 것도 있다. 1시간 가량 걸려 정상에 도착했고 정상석 부근의 데크에 텐트를 설치했다. 일요일-월요일 넘어가는 밤이라 나처럼 야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으슥한 밤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는데 오후 11시쯤 남자 여자 네다섯명으로 구성된 크루가 올라왔고 새벽 2시 4시에도 한차례씩 등산객이 있었다. 오전 7시쯤이었나 해가 뜨고 사위가 밝아졌는데 새벽 등산객들이 보여 텐트를 정리하고 하산했다. 등산스틱이 아주 요긴했는데 무거운 배낭을 맨 상태에선 오르는 길에 다리의 부담을 덜어주고 하산할 때도 무릎의 부담을 덜어줬다. 균형 잡는 것도 스틱을 사용하니 수월했다.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온 백패킹이었는데 나중에 아내와 이야기 해보니 아내의 시각은 달랐다. 아내 생각으로는 백패킹 자체가 위험한 활동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혼자하는 백패킹을 말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실족하거나 그 밖의 이유로 다칠 수 있는데 혼자라면 도와줄 사람이 없어 위험하고, 야간 산행이라면 시야 확보도 낮 보다는 어렵고 사람 역시 없어 더 위험하다. 산에서 머무는 일도 위험할 수 있는데 산짐승이나 이상한 사람을 마주하는 위험이다. 여기에 추운 날, 비 혹은 눈 내리는 날이라면 저체온증의 위험도 더해진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위험에 대한 감각이 나는 무딘 편인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계산된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한 내용 중 대부분은 이미 파악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한다. 물론 대비를 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최종적인 위험을 평가할 때 나와 아내는 위험의 발생 확률을 적용할 떄 다른 수치를 사용하나보다. 나는 낮은 확률이라 생각하여 최종적인 위험의 강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높은 확률을 적용하여 큰 위험을 감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나와 아내의 그 중간 어디쯤이 실제 위험의 크기겠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며 위험을 비롯한 사건들을 계량하고 대비하고 통제하고 혹은 대처하는 일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기반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백패킹을 하는 것도 일상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자신만만함 혹은 오만은 정말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겠다. 게다가 아직 어린 아이가 있는 상황이니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게 맞다. 경험을 쌓고, 아내가 보기에도 내가 감수하는 위험이 충분히 파악된, 그리고 통제된 위험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땐 백패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내와 이야기 하면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최근 백패킹과 등산 이야기를 하며 내게 했던 이야기가 있다. 나는 늘 새로운 주제로 관심을 돌리고 에너지를 쏟아붇고 열정이 식으면 다시 다음 대상을 찾아 반복한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는 컴퓨터에 푹 빠져 살았다. 코딩 하는 것 자체로도 너무 즐겁고 내가 뭔가 의미있는 걸 만들어 낸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러다 운동에 재미를 붙였는데 처음엔 클라이밍이었다. 훈련 한답시고 행보드 사서 집에 설치했는데 해머드릴로 베란다 쪽 콘크리트 벽을 뚫어 설치했다. 아내가 봤을 땐 분명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클라이밍 관련 서적들도 사 모았고 실력을 늘릴 방법을 찾아다녔다. 어떤 시점엔 실력이 잘 늘지 않아 조급해했던 시기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 이상으로 실력도 많이 늘었고 신체도 단련되었는지 그때만큼 피곤하지도 않고 잘 다치지도 않는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 클라이밍은 반려 운동처럼 틈틈히 하는데 욕심내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편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실력이 늘면 좋겠지만 전전긍긍하지는 않는다. 다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실력은 늘 것이니. 그러다 코로나 대유행 때 클라이밍을 할 수 없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달리기 관련 책들을 탐독하고 영상들을 찾아보고 어떤 러닝화가 내게 맞을지 찾아보고 복장이나 소품들을 찾아봤다. 그렇다고 엄청 돈을 들이는 편은 아니라서 적당한 가격의 러닝화로 시작했다. 나도 생각이 있는지라 이 취미가 얼만큼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도 처음엔 열정을 불태우며 빠른 속도로 달리기 위한 훈련들을 했다. 헬스장 트레드밀에서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해보고 바깥에서 달릴 땐 가민 코치 프로그램을 통해 훈련해보기도 했다. 역시 시간이 지나니 처음의 열정을 식고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두 운동 모두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어 근력과 심폐지구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한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보기도 했는데 프리웨이트 운동 방법들을 찾아보고 스트렝스를 늘리는 방법을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나는 벌크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일 뿐더러 벌크업을 위해선 많이 먹고 그런 칼로리 섭취를 유지해야하는데 내겐 운동보다 그게 더 어려웠다. 또한 평소에 사용하지 않을 근육들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내겐 낭비로 보였다. 오히려 근육 부피를 크게 늘리지 않고 스트렝스를 늘리는 일은 관심이 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달리기에 주로 할애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스트렝스 운동을 다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엔 백패킹과 등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 백패킹 장비를 신나게 사보았는데 많이 알아보고 내게 적합한 기능과 가격의 물건들로 골랐다. 그 과정에서 백패킹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했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백패킹은 아내 입장에서 자주 보내주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등산에도 관심을 가져봤다. 시험 삼아 한번 가봤는데 생각보다 상쾌하고 좋았다. 등산은 한참 전에 어머니와 검단산 올랐던 일 정도 밖에 없고 그 이후로 다시 생각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클라이밍 달리기 등 운동을 즐겨하는 사람으로 변모해있었고 다시 등산을 해봤을 떄 이 역시 매력적인 운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내 말이 맞다. 나는 이렇게 몸을 움직이며 힘쓰는 일에서 도파민이 생긴다.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는 일도 그렇다. 열정은 식게 마련이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그렇게 배운 일들이 내게 맞는다면 오래 꾸준히 함께할 수 있다. 아내 왈, 그런 일들은 유사 바람 같다고. 바람피는 일처럼 여기 저기로 관심을 옮겨가며 불태우니 말이다. 반박하기 어려웠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면 밀린 집안일을 한다. 하지만 미룰 수 있는 집안일은 많지 않다. 매일 설거지 거리와 빨래 거리는 만들어지기 때문에 식기세척기와 세탁기 건조기 돌리는 일은 매일 시간 날 때 돌린다. 평일 어떤 날은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여 놀다가 시간이 가버리기도 하므로, 그리고 금요일 저녁엔 주말로 집안일을 미루기로 하므로 주말에도 설거지와 세탁은 이어진다. 평일엔 집안일 할 시간이 빠듯하다. 오전 6-7시쯤 출근하러 집에서 나서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후 7시 조금 넘는다. 아내와 식사를 마치면 8시쯤 되는데 아이는 오후 9-10시쯤 잠들기 때문에 1-2시간 밖에 시간이 없다. 아이가 혼자 놀고 있거나 영상을 보는 시간, 짬내어 설거지 하고 어질러진 거실을 정리한다. 재활용 쓰레기가 많이 쌓이면, 음식물 쓰레기통이 차면 그것도 얼른 내다 버리고 온다. 집이 좁아서 아이가 잠든 후 집안일을 하기 어렵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기대하는 부분이 아이 잠든 사이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용 시간이 많아질테니 집도 좀 더 정돈되겠지. 엉덩이를 잘 붙이고 있지 않고 분주한 편이라 계속 할일이 눈에 띄고 그럼 또 일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다. 주말은 한발자국 더 나갈 수 있는 날이다. 매일의 집안일은 그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 투입이라면 주말은 그 상태에서 약간 더 깨끗해질 수 있는 날이다. 안 쓰는 물건을 나눔하거나 오늘 같은 경우는 책을 정리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 생각이었는데 반은 매입 불가여서 오늘 꺼낸 책들 중 반은 팔고 반은 기부하거나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해도 아직 처분할 책들이 더 많다. 책을 하나 둘 사모을 땐 생각치 못했는데 책을 처분하는 것도 쉽지는 않구나. 아마 가장 쉽게는 집 근처 재활용 처리장에 폐지로 처분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늘 맥시멀리스트였는데 요샌 미니멀리즘 책을 읽으며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여러 미니멀리즘 책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건을 갖거나 버리거나 는 표면의 모습이고 사실은 가치에 대한 개념이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그 물건에 투영하고 있는 감정, 생각 때문이다. 나는 보통 “언젠가 쓸 수 있겠지” 라는 마음과 그 물건 이 나의 자아의 일부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잘 버리지 못했다. 특히 책은 그 두가지가 같이 작용한다. “나는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고 이런 지식을 갖춘(갖출) 사람이야” + “지금은 어렵지만 여유가 생기면 분명 읽을 수 있을거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전의 관심과 욕심은 지금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한 책들은 그저 그 시절의 망령이고 미련인 것이다.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관심있는 모든 걸 익힐 수도 없고 그럴만한 시간도 없다. 깊이를 챙길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이다. 지금 읽는 책의 조언 중 하나는, “물건을 버릴 때 창의적이 되지 말아라” 가 있는데 그건 물건을 버리기 아쉬워서 다른 사용처 등을 생각해내는 일이다. 이를테면 과자가 들어있던 예쁜 틴케이스를 잡동사니를 담아두기 위한 용기로 사용한다던가. 나의 관심사인 (혹은 관심사 였던) 것들로 시각예술, 전자공학 만들기, 수학-물리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들을 한데 묶어 사용할 수 있는 걸 생각했다. 그건 컴퓨터-인터랙션 예술. 아끼는 필기구와 노트 혹은 노트 앱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해야 하고, 결과물로 전자공학이 가미되어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AI라도 사용할라치면 수학-물리를 알고 있는 편이 도움이 되리라. 그럼 이제 별로 버릴 것이 없어진다. 오늘 책을 버리면서.. 나의 책을 100권만 남기는 걸로 대강 목표를 세웠었는데 책들의 수효를 보니 굉장히 도전적인 목표였다. SF 소설 책들은 남기고 싶은데 아마 그것만 하여도 50권은 채워질 것 같다. 책 버리는 일은 10번은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물건 버리는 일이, 선택과 집중하는 일이 녹록치 않다.

2024년 한해가 지나고 다시 새로운 한해. 계획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데 그렇기 때문이 계획을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즉흥 연주와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유연하긴 하지만 거의 무계획의 삶이 되어버린다. 아내와 다투는 지점이 이 부분이다. 나는 계획이 없는 만큼 (그리고 계획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과 변수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반면, 아내는 나의 계획 없음에 (아내는 생각 없음이라고 하지만) 불안해하고 답답해한다. 맞는 말이기도 한데 계획이 필요하긴 하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청사진 같은 것. 한치 앞을 모르는 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방향을 생각하는 일은 중요하겠지. 나는 관성의 인간이다. 휩쓸려 가는 걸 불안해하지만 휩쓸려가게 내버려 둔다. 가정의 일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불안해하는 지점이 여기다. 우리 배가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말이다. 올해엔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을 자주 갖길 바란다.

매일의 하루에서 가장 자주 보고 마주치는 사람은 단연 동료들이다. 동료들을 보면 감탄할 때가 많다. 내가 다루지 않는 분야에서 척척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 초인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것들은 평가 절하 하기도 하니까 나도 나의 일은 쉬운 일이라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업무 말고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취향이다. 다들 무언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며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취향 없음이 고민이다. 아내도 종종 비슷한 얘기를 하는데 너는 일 말고는 관심이 없다, 스포츠도 게임도 즐기지 않고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컴퓨터 말고는 별로 즐기는 게 없었지만 듣고보니 억울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성인이 된 후 2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그 사이 좋아하고 싫어하는게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취향 없음 보다는 취향의 깊이가 얕아서 문제다. 겉핥기 같은 느낌으로 알고 있어서 무얼 좋아해요? 라고 질문을 받으면 분야 정도 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취향의 깊이를 만들까, 가장 먼저 타파해야 할 것은 생산성의 함정이다. 좋아하는 것에 탐닉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고 그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마음이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은 개성이 돈이 되는 시대다.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고 그런 만큼 모방이 쉬운 지금, 개성이라는 해자가 없이는 쉽게 경쟁력을 잃고 말 것이다. 생산적인 일만 하는 건 몰개성하며 결국 방향을 잘못 잡은 일만 해대는 셈이다. 오히려 깊은 취향을 갖고 그 집단에서 인정 받기 시작하면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 사업에 대한 책들을 잔뜩 읽었을 때 더러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커뮤니티-우선 이다. 사업은 결국 고객을 만나 물건을 판매하는 일인데 수요를 알기 쉬운 방법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아직 충족되지 않은 니즈들을 알 수 있고 그걸 효과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방법들을 실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놓고 보니 웃긴 것이,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라, 좋아하는 것에 탐닉하라고 말하면서 사실 그 행위 또한 사업의 기회 내지는 경제적인 편익을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모순적이다. 뭐 아무튼 나도 이제 마음 놓고 좋아하는 걸 좋아해보고 싶다. SF 소설을 맘대로 읽고, 전자공학 만들기도 하고 같잖은 뉴미디어 예술 작품들도 만들어보고 싶단 말이다.

한참을 일에 몰두하다가 퇴근을 하는데 일할 때 무얼 가장 많이 했는가 떠올리니 검색입니다. 정해진 로직을 구현하는 일은 외부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할 땐 검색하는 시간이 전체 작업의 9할이 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지금 착수하고 있는 일을 간단히 설명하면,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던 VLC 미디어 재생기가 갑자기 죽었고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겁니다. VLC 크래시 덤프는 Mini Dump 라는 형식인데 심볼 정보가 없어 그냥 들여다봐선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하여 VLC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디버그 심볼 정보를 활용하고 싶은데 그러자면 gdb를 이용해야 합니다. Mini dump 형식의 파일을 GDB용 core 파일로 변환하는 도구를 컴파일해 사용해보는게 지금의 계획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하여도 모든 컴퓨터 분야를 깊게 알고 있을 순 없으므로 이런 문제를 다룰 땐 큰 범위에서 문제 해결 전략을 구상하고 자세한 정보들은 검색으로 채워나가며 진행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의 실제 실행 난이도를 파악할 수 있고 때로 다른 접근의 가설을 새로 세우기도 합니다.

앞서 Gen AI 시대의 프로그래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런 기술는 비단 프로그래머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검색을 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그 모습은 예전과 다릅니다. StackOverflow 등의 개발 커뮤니티 위주로 검색을 했던 게 옛모습이라면 지금은 미리 학습된 LLM, 곧 ChatGPT, Claude에게 질문을 하고 최신 정보가 필요할 땐 Perplexity AI에게 질문을 합니다. LLM들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지만 그곳에 진실만 있는 건 아닙니다. 특히 컴퓨터 분야의 질문은 그럴싸한 모양으로 해결책을 알려주는데 생각없이 따라하다가 잘못된 길이라는 걸 뒤는게 깨닫곤 합니다.

전통적인 검색에서는 다양한 결과에서 자신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정보를 찾아내고 통합하는 것이 사람의 몫이었다면 지금의 검색은 나에게 주어진 대답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있는지 저울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때론 그것이 기존 검색보다 더 돌아가는 길을 만들지도 모릅니다. 새 시대의 정보검색 소양은 거짓말 탐지 기술일런지요.